
저는 원래 귀신이 무섭다기보다,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 더 무서운 사람입니다.
밤길보다도 오래된 산길이 더 꺼림칙하고, 폐가보다도 관리되지 않은 묘지 근처를 지날 때 이상하게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아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래 묻혀 있던 무언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느낌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화 파묘를 볼 때도 처음엔 단순한 오컬트 공포를 기대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남은 감정은 공포 하나로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는 귀신 이야기이면서도 풍수와 무속, 조상의 죄, 그리고 결국엔 우리가 밟고 사는 땅의 역사까지 끌고 들어옵니다. 무섭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자주 “이 이야기를 여기까지 밀고 온 이유가 뭘까”를 생각하게 만든 영화였습니다.
빛과 그림자로 시작하는 영화,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경계
영화 초반 비행기 창밖 풍경에서 시작하는 연출은 참 좋았습니다. 해가 구름에 가려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고, 인물의 얼굴에도 빛과 그림자가 번갈아 걸립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이 영화가 처음부터 음과 양, 산 사람과 죽은 사람, 겉으로 드러난 것과 감춰진 것을 동시에 붙잡고 가려는 작품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특히 화림과 봉길의 첫인상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전통적인 무당의 이미지와 꽤 다르죠. 젊고 세련됐고, 비즈니스석에 앉아 있고, 말하자면 이 세계에서도 전문직처럼 보입니다. 이 설정이 저는 꽤 흥미로웠습니다.
무속이라는 세계를 낡은 이미지로만 가두지 않고, 지금 시대의 기술자처럼 보여준다는 점에서요. 실제로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막연한 영감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람을 보고, 집을 보고, 묘를 보고, 징후를 읽고, 각자의 방식으로 판단합니다. 저는 그 점이 좋았습니다. 무서움의 정체를 “그냥 무섭다”로 두지 않고, 하나하나 짚어내며 접근하는 태도 말입니다.
상덕과 화림, 서로 다른 감각을 가진 사람들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좋았던 건 인물 조합이었습니다. 화림과 봉길이 하늘과 소리, 기운을 읽는 쪽에 가깝다면, 상덕과 영근은 땅과 냄새, 감촉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특히 상덕이 흙을 손으로 만지고, 맛을 보고, 냄새를 맡는 장면은 긴 설명보다 훨씬 강하게 캐릭터를 보여줬습니다. “이 사람은 말보다 감각으로 판단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게 단번에 들어오더라고요.
저는 이런 장면을 좋아합니다. 굳이 친절한 대사로 “나는 이런 사람이오”라고 말하지 않아도, 손의 움직임 하나로 인물이 설명되는 순간이요. 실제로 삶에서도 그런 것 같거든요. 어떤 사람은 말을 아주 번지르르하게 하는데도 믿음이 안 가고, 어떤 사람은 짧은 행동 하나로 이상하게 신뢰가 갑니다. 상덕은 후자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툭툭 던지는 말투는 무심한데, 이상하게 그 사람이 하는 판단은 믿고 싶어집니다.
화림도 좋았습니다. 김고은 배우가 이번 영화에서 보여준 에너지는 제가 알던 이미지보다 훨씬 거칠고 날것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원래 이 배우가 가진 특유의 선명한 분위기를 좋아했는데, 이번엔 그 매력이 그냥 예쁘거나 강한 수준이 아니라 정말 몸을 던지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굿 장면에서는 특히 그랬습니다. 보면서 ‘연기를 잘한다’는 생각보다, 그냥 그 자리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어요.
중반까지는 정말 훌륭했다는 생각
솔직히 말하면 저는 파묘의 중반부까지는 정말 몰입해서 봤습니다. 묘 자리가 이상하다는 직감, 이름 대신 숫자가 적힌 비석, 산의 분위기, 여우, 관을 열기 전부터 감도는 불길함. 이런 것들이 하나씩 쌓일 때 영화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상당했습니다. 무섭다기보다 찜찜했고, 찜찜하다기보다 점점 잘못된 방향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감각이 강했죠. 저는 그 정서가 참 좋았습니다.
특히 이 영화는 “그냥 부자다” 같은 말 하나도 흘려보내지 않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유 없는 부가 아니고, 이유 없는 악도 아니고, 그냥 있는 불길함도 아닙니다. 다 뿌리가 있고, 연결이 있고, 그걸 파고들수록 더 큰 무언가가 나온다는 구조죠. 저는 감독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짜는 걸 꽤 잘한다고 느꼈습니다. 오컬트 영화인데도 기자처럼 조사하고, 증거를 모으고, 논리를 세워가며 진실에 다가가는 느낌이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저는 이 영화가 엄청나게 공포스럽다기보다, 흥미롭고 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무서워서 눈을 못 뜨게 만드는 영화라기보다, 다음 단서를 빨리 알고 싶게 만드는 영화에 더 가까웠어요.
굿, 혼령, 그리고 ‘존나 험한 것’이 나오기 전까지
굿 장면은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듯 이 영화의 큰 하이라이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 장면은 단순히 볼거리가 화려해서가 아니라, 영화 전체가 쌓아온 에너지가 한순간에 터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장면을 볼 때 항상 감독이 얼마나 과하게 밀어붙일지, 아니면 어느 순간 한발 물러설지를 보게 되는데 파묘는 중반까지 그 균형을 꽤 잘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막 치닫다가도 너무 과해지기 전에 뒤로 물러나고, 몰입시켰다가도 관객이 상황을 한 번 더 볼 수 있게 해주더라고요.
그리고 관이 열리고, 그 안에서 예상보다 훨씬 험한 것이 튀어나오는 순간부터 영화는 확실히 더 재미있어집니다. 미국까지 혼령이 따라가고, 핏줄을 쫓고, 문을 열어야만 들어올 수 있는 존재라는 설정도 저는 꽤 흥미로웠습니다. 어릴 때 제사 지낼 때 문을 열어두던 기억이 저도 있어서 그런지, 저런 설정이 전혀 낯설지 않게 들어왔거든요. 한국식 공포가 국경을 넘어가도 여전히 작동한다는 점도 묘하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후반부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저 역시 많은 분들이 말하듯, 후반부의 방향 전환에는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고 느꼈습니다. 중반까지의 파묘는 규칙을 세우고, 그 규칙 안에서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그 룰이 느슨해지고, 영화의 톤도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감춰진 조상의 죄와 묘의 비밀”을 파헤치는 이야기였는데, 어느 순간 훨씬 직접적이고 거대한 적과의 대결처럼 바뀌어 버립니다.
저는 이 부분이 아주 별로였다고까지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분명 아쉬웠습니다. 왜냐하면 중반까지는 각 인물의 선택과 기술, 감각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이야기를 끌고 갔는데, 후반은 조금 더 단순한 선악 구도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관객이 인물들과 함께 추리하고 버티던 재미가 줄어듭니다. 그냥 “이겨야 하는 싸움”으로 바뀌어 버리니까요.
물론 그 방향이 통쾌하다고 느끼는 관객도 있을 겁니다. 저도 한일전처럼 받아들여지는 후반의 정서가 왜 먹히는지는 알겠어요. 실제로 극장에서 그쪽 반응도 꽤 뜨거웠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그 전까지 너무 잘 쌓아온 미묘한 불길함과 서늘한 품위가 조금 무너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오래 남는 이유
그런데도 저는 파묘를 꽤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귀신을 무서워하게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고, 결국 무엇이 땅에 묻혀 있었는가, 우리가 지금까지 무엇을 모른 척하고 살아왔는가를 묻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조상 묘 하나의 문제가 친일의 역사로 이어지고, 개인의 불행이 집안의 죄와 연결되고, 나아가 나라의 허리를 끊는 상징까지 나아가는 흐름은 다소 직설적일 수 있어도 분명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저는 영화를 보고 나서 묘하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도 그렇고 역사도 그렇고, 제대로 끝내지 못한 것은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다시 올라오는구나 하고요. 덮었다고 끝난 게 아니고, 묻었다고 사라진 게 아니라는 사실이요. 살면서도 비슷한 걸 느낄 때가 있습니다. 대충 넘어간 감정, 외면한 상처, 제대로 말하지 못한 일들은 결국 다른 얼굴로 다시 돌아오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파묘는 오컬트 영화이면서도 꽤 현실적인 영화였습니다.
무섭다기보다, 이상하게 오래 생각나는 영화
파묘는 완벽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반부의 밀도와 긴장감, 인물들의 조합, 감각적인 설정은 정말 좋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과감함과 과잉이 함께 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분명 한국 상업영화 안에서 보기 드문 질감과 개성을 가진 작품입니다. 무속, 풍수, 역사, 가족, 공포를 한데 섞으면서도 적어도 중반까지는 아주 힘 있게 끌고 가니까요.
무서운 영화를 찾는 사람에게는 기대와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설명되지 않는 공포보다, 설명되는데도 찜찜한 공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꽤 만족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바로 “너무 무서웠다”는 말은 안 나왔지만, 며칠 동안 산과 땅, 묘지, 오래된 사진 같은 것들이 이상하게 자꾸 떠올랐습니다. 아마 좋은 오컬트 영화는 점프 스케어보다 그런 식으로 남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단순한 오컬트 영화가 아니라는걸 우리는 알고있습니다.
일본의 풍수침략이라고 하지요. 맥을 끊겠다고 우리나라에 쇠말뚝을 박았던 일본의 악행을 그린 영화이기도합니다.
그리고 믿도끝도없이 그냥 부자라는 친일파 후손들이 결국 죗값을 받는다는 스토리도 인상적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잊고 있던 우리의 역사또한 함께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영화였다고 생각했습니다.